CHAPTER 2
공장 이전, 그리고 끊임없는 도전
1995
가스누출사고 & 공장이전
공장 내부는 물론 인근 우성아파트와 신도림중학교까지 번져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대피하는 소동까지 벌어졌다.
동년 6월 12일 발생했던 가스 누출사고와 겹쳐 결국 신도림동 공해 추방 비상대책위원회가 결성되었고, 주민들의 시위가 시작되었다.
당시 인근에는 당사를 비롯해 삼영화학, 한국타이어, 대성연탄, 종근당 등 여러 공장들이 자리하고 있었던 시절이다. 비대위를 비롯해 환경단체, 지역사회단체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사건이었다.
당사 모든 공장은 가동이 중단되었으며, 서울시에서는 한국산업안전공단에 안전진단을 의뢰하면서 자체 이전 계획서 제출을 요구해왔다.
비대위와는 환경과 공해연구회에 당사의 환경과 안전성에 대한 조사를 의뢰하기로 하여 2개월에 걸쳐 조사, 평가되었다.
당사에서는 기업 존속 유지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생사고락을 같이 해온 직원들의 생계유지를 위해 화학공장 전체를 돔으로 쌓겠다는 안까지 제출하였으나,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결국 공장 이전으로 결론이 나게 되었다.
1997
안산공장건설 및 이전
이어서 동년 11월까지 이전 작업이 완료되었다. 이스트 공장, 가공품 공장, 빵크림 공장뿐이었다.
1995년 신도림공장 시대의 총인원 337명에서 안산공장 시대의 총인원은 115명으로 대폭 감소되었으며, 매출액도 연 162억 원에서 연 101억 원으로 대폭 감소되었다.
그러나 아파트 분양사업으로 자금력은 풍족한 상태로 홍순모 사장은 무엇보다 먼저 직원들을 위해 20억 원을 출연해 사내근로복지기금을 설립하여 사내 복지제도를 튼튼히 하였다.
또한 빠른 사세 확장을 위해 M&A에 사업 초점을 맞추었다.
2000
사업확장을 위한 M&A
안산공장으로의 이전이 완료된 후 홍순모 사장은 빠른 사업 확장을 위해 M&A TF팀을 구성하고, 신규 사업에 박차를 가하여 마침내 2000년 9월 8일 삼양테크힐의 스테비오싸이드공장을 인수하게 되었다. 계약 며칠 전 삼양테크힐의 그룹 본사인 삼양사에서 천연감미료 사업의 매각 사유가 아스파탐 수입 판매를 하기 위함으로 파악되었다. 이에 과연 천연감미료 스테비오싸이드의 사업 전망이 있는지에 대한 재검토가 진행되었고 향후 최소 5년 정도는 사업타당성이 있다고 판단되었다.
더욱이 안산공장 바로 옆의 부지로서 공장 확장을 위한 부동산 취득이라는 긍정적인 관점에서 평가하기로 하고 사업 인수 계약이 체결되었다.
인수 후 연 3~5억 상당의 이익이 지속 발생되었고, 부동산 가치도 매입대금 38억 원을 상회하는 60억 원의 가치로 올라 성공적인 M&A로 평가되었다.
2001
치즈사업 인수, 성공적 발전
이에 M&A TF팀을 구성하여 검토 결과, 자산인수방식으로 진행하기로 하고, 2001년 9월 5일 계약을 체결하였다.
경기도 광주시에 소재한 치즈공장은 관리 효율화를 위해 2004년 2월에 안산공장으로 이전하였다.
치즈사업은 성공적이었다. 사업 인수 이듬해인 2002년 치즈 매출액은 연 103억 원이었고, 10년 만에 연 600억 원으로 성장하였으며 현재 연 2,000억 원을 넘어섰다.
유가공업체를 제외한 치즈 수입 가공 회사 중에서는 매출액이 가장 큰 회사로 성장했다.
매출성장 면이나 수익성 확보 면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는 부문으로 치즈를 이용한 제품, 즉 피자, 치즈소스류, 치즈스틱, 구워먹는 치즈, 스트링치즈와 같은 치즈를 이용한 제품군의 취급을 적극 검토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2004
독립경영체제 전환, 상호변경
2004년 당사는 창업주의 2세들이 공동경영을 하던 때로, 미래 기업 운영에 대한 발전적인 면과 상호 합리적인 경영을 고려하여 독립경영 체제로 전환하기로 함에 따라 조흥은 오뚜기로 편입되게 되었다. 이로 인해 공영호 전무이사가 대표이사를 맡아 운영하게 되었다.
2003년 매출액이 312억 원이고, 종업원 수가 129명으로 치즈사업이 성장하고 있다고는 하나 사세 확장의 노력이 필요하던 때였다. 공영호 사장은 신규 사업으로 유통업을 준비해 나갔다.
처음 사업 구상 때는 친환경 상품과 오뚜기 상품을 같이 진열 판매하는 것으로 구상하였으나, 뉴질랜드 유기농 전문 업체인 허클베리팜스와 마스터 프랜차이즈 계약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친환경 상품만을 취급하는 것으로 하여, 오뚜기 상품도 친환경 상품을 일부 취급하게 되었다.
2004년 9월 상호를 ‘조흥화학공업주식회사’에서 ‘주식회사 조흥’으로 변경하였고, 2004년 10월에 강남 선릉에 금강타워빌딩 12층 전체를 분양받아 계동빌딩에 있던 서울 사무실을 이전하였다. 이로써 1959년부터 2004년까지 45년간의 북창동 계동빌딩에서의 경영활동이 막을 내리고 선릉 금강타워에서의 경영이 시작되었다.
2004
유기농 사업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 ‘가이아’와 자연이 어우러진 형태를 형상화한 심벌로써 태초에 태양 아래 녹색의 땅에 씨앗을 뿌리는 대지의 여신과 같이 우리나라 친환경∙유기농 업계의 선두주자로 국민 건강과 환경의 부활을 선도하는 브랜드로 키워 나갈 계획이었다.
2004년 11월 12일 1호 직영점인 압구정점 오픈으로 사업이 시작되었다. 이어서 11월 26일 2호 직영점인 분당 정자점을 오픈하고, 2005년 2월에 온라인 쇼핑몰 개설, 4월에 롯데슈퍼와 메가마트 입점, 6월에 GS백화점에 입점하였다.
2005년 8월에 이마트 납품이 시작되었으며, 2006년 2월 롯데백화점 입점, 3월에 친환경 식당인 글루칸면옥을 오픈하였다.
4월에는 문래동 부지에 3호 직영점 및 도소매 물류센터인 문래점을 오픈하고, 2007년 9월 4호 직영점인 부산 해운대점을 오픈하였다.
이때 가맹 사업도 시작되었다. 3년에 걸친 사업 확장으로 유기농 사업은 135억 원의 매출을 이루었으나, 당시 친환경∙유기농 식품에 대한 인식이 다소 부족하여 사업은 적자를 면치 못했다. 장차 필요한 사업 군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소비자들의 친환경에 대한 인식이 아직 성숙하지 않았던 시기에 사업이 시작되었으므로 수익성이 장기간 미약할 것으로 예상되어 결국 2009년 11월에 유기농 사업을 중단하게 되었다.
2005
씻어나온 쌀 사업
당시의 주부들에게는 ‘그래도 쌀은 씻어서 밥을 지어야지’ 하는 인식으로 크게 호응을 받지 못하였으나, 씻을 필요 없이 물만 부어 밥을 하면 되므로 앞으로 맞벌이 부부나 싱글족에게는 필요한 상품으로 판단하고 인수를 결정하게 되었다. 당시 오뚜기에서도 일본 기계를 이용한 씻어 나온 쌀 사업을 검토 중이었다. 어찌 보면 그룹 내에서 사업이 중복되는 상황이기도 하였다.
인수 후 판매력 결여로 사업 확대가 되지 않던 중, 오뚜기의 단체급식 물량의 일부를 OEM 생산 공급하게 되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되었다.
라이스텍과 오뚜기는 쌀 씻는 기계의 특성 차이가 있어 밥을 지을 때의 물의 정도 등 조리 조건이 달랐으나, 이를 급식업체에서 동일하게 취사하면서 밥이 잘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하여 오뚜기에서 라이스텍 씻어 나온 쌀 취급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라이스텍의 자체 영업력 부족으로 매출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되어 2009년 7월 1일 사업을 재 매각하게 되었다.